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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7 언젠가, 도서관 가기 귀찮아서..
  2. 2008/04/07 소통과 소통 사이의 비명.

언젠가, 도서관 가기 귀찮아서..

Posted 2008/04/07 13:36 by arc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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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시의 데이트입니다.

주절 주절 주절 주절 주절 주절 주절 주절


라디오가 쉴 새 없이 떠들어제낀다. 내일은, 날씨가 어떻겠구나,

지금 서울 교통은 어떻구나, 따위의 소식들이 마치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것처럼 자연스럽다. 확실히, 누가 그랬더라? 아, 그렇구나,
라디오에서 들었지, 하고 말할법한.


심심하지는 않다. 그야, 그렇게 떠들어대니까, 귀를 기울이고, 배가 아플 정도로 웃다보면, 시간을 흘렀다. 하루가 지났다. 지금 몇시지? 이런, 역시 문명이란 좋은거야. 언젠가는, 오늘이 몇일이지? 하고 무한한 몰입감,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뒤늦게 찾아온 허무함 따위가 짭쪼름하게 버무려진 자문 따위를 중얼거리게 되겠지..


딸깍, 하고 라디오를 끈다. 가만 생각해보면 심심하지 않다고 해서,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세, 그게, 그러니까, 확실히, 철없던 시절에는 그랬다. 분명, 심심함과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동의어로
인식되었구나, 싶은,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내게는 그 시절이라는게 있었다면 분명, 인간 본성이라는 것에 적어도 한발짝 정도는 다가서 있지 않았을까. 지금보다는, 적어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심심하지 않기 위해, 어울렸다. 친구라는 녀석들과..


돌이켜보면, 친구라는게 참 그렇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한명, 한명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치사한 자식부터 시작해서, 늘 빈대붙던 자식, 싸가지 없던 자식, 갑자기 혈압이 오르고, 이가 갈리고,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데, 어쨌건 친구라는 것들이 없다면 나 자신에 대해서 혈압이 오르고, 이가 갈리고, 내가 정말 왜 이러고 있나 싶지 않을까 하는, 그렇고 그런 것이다.


심심하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외롭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애초에 성선설 따위를 믿어서 착하게 살아온 인생은 아니지만,  '함께'수업을 제끼고, 체육관 뒤편에 누워 담배 한대를 태우고 있으면,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게 바라보며 구름을 만들어 흘러보내고 있으면, 아, 지구가, 돌고 있긴 하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내가, 이 곳에, 살아있구나, 언제 끌려가서 벌을 받게 될지, 계속 제껴버릴지, 그런건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거구나, 삶이란 것은, 그래, 삶이란 그냥 좋은 거야, 나른하다,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거, 좋은 삶이면 비싼 담배 좀 피지, 시끄러워, 하고 나는 눈을 감는다. 웅얼웅얼~


딸깍, 하고 다시 라디오를 켜본다. 대체 뭐가, 심심함과 외로움을 따로 나누어버린 것일까. 에이씨, 어릴 때는 , 안그랬는데, 세상 참, 복잡하네. 감당해야 할 감정이 하나 더 늘어버렸으니, 어쩐지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시험봐야 할 과목이 하나 더 늘어난 것도 아닌데 뭘, 하고 고민하던 날 보다못한 친구는, 말했었지.


심심하지 않게 위해, 그건 절박한 이유다. 얼마나, 라고 묻는다면,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우리 인류는 심심했던 나머지, 인쇄술을 발명했고, 자동차를, 라디오를, TV를 발명했다고. 어쩌면,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종교라는 것도 심심하니까 우리 함께 모여서 뭐라도 해보자, 하다가,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요새 항간에 유행하고 있는 음모론적인 말이지만, 예수님이 심심했는지, 부처님이 심심했는지,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구인들끼리만 노는 것조차 몹시 심심했던지, 인간은 우주항공국 따위를 설립하고, 우주로 가는 방법을 연구하기에 이른다. 심심하지 않기 위해, 이루어낸 인류의 성과들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이것은 아이러니요, 어떤 공교로움이라고 부를법하다.


또르르. 또르르 하고 라디오 휠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낯설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쳐서일까, 분명 이건.. 새로운 느낌.
혀로 입맛을 다시다, 혀 끝이 교정쇠에 닿았을때 느껴질법한 강한 이물감 같은 것이 팽팽하다.


오호라, 그랬군, 문제는 '문명의 이기'였던게로군, 하고 생각하며, 45킬로짜리 중국산 수입콩을 수천박스 운반해서  장만한 라디오를 다시한번 쳐다본다.


야, 짜식들 니네 엠피삼 샀구나? 어, 같이가서. 근데, 둘이 똑같네?
한 녀석은 발끈, 하며 얼굴을 붉힌다. 딸기같다. 아냐 임마, 내껀 1기가 짜리고 얘껀 512짜리라고. 그래, 그렇구나. 그런거로구나. 근데 둘이 똑같네? 울그락붉으락 확실히, 그냥 봐선, 뭐가뭔지..
기분 이상해. 뭐가? 난 분명 돈을 두 배 가까이 냈는데, 똑같잖아.
마치, 4천만원짜리 차를 샀는데, 2천만원 짜리랑 똑같이 생겼다면 기분이 어떻겠어? 뭐야 그게, 라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바라보는 내게,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던 그 녀석은, 에리히 프롬이라는 사람이 말한것처럼, 소유의 실질적 가치라는 것에 심하게 집착하는 부류의 종족이었던 것일까? 나에겐 2천만원도, 4천만원도.. 다른세상 이야기만 같은데..


오, 이거 좋다. 근데 용량이 다 차면 어떻게 해?
지워. 지워? 응, 지우고 다른 걸 저장하면 되. 잠깐, 잠깐, 잠깐, 잠깐, 이상하다. 기분이. 그렇게 저장했다, 지웠다, 저장했다, 지웠다 하면 그 음악은 어떻게 되는거지? 흔적도 없이 사라질텐데.. 그렇다면 내가 그 음악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잇을까? 좋아하는 무언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건, 참, 가슴 한켠이 따끔따끔 쓰라린 일이구나.


무슨 소릴 하는거야, 더 큰 용량을 지원하는 최신기종이 얼마나 많은데, 컴퓨터에 저장해도 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음악은, 마음속에 있는거야, 라고 친구는 해맑게 웃었다.


아, 그렇구나, 음악은,
마음속에 있는 거구나..


정말, 그럴까? 수십기가짜리 최신기기에 좋아하는 음악을 한가득 집어넣고, 그 용량의 무게 때문에, 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을 만큼 넘쳐나는 여유공간을 가지고 있다한들, 나는,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찰에게 쫓기는 도선생마냥, 심각한 표정으로, 절박한 심정으로, 저장과 삭제를 무한반복하게 되는건 아닐까?
넘는 공간이기에 채워야만 하고, 다 채우면 공간이 부족하기에, 더 넓은 공간을 찾는 우리들은 확실히, 너무 지쳐있는것은 아닐까?


메모리카드를 1기가 짜리에서 2기가 짜리로 바꿨어. 근데, 허무하다. 왜? 라고 묻는 내게 앞에 적힌 숫자가 1레서 2로 바뀐 것 외엔 아무것도, 라고 중얼거리던 친구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너무나도, 어두웠다. 너무, 너무,,


문득 형이 보고싶었다.
새로 옮긴 형의 자취방은 딱 그정도였다. 넓다고 하기엔 조금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좁다고 하기에도 조금 그런, 딱 그정도.
너무 오래들어, 더는 듣고 싶어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은 오래된 테이프를 태우던 형은, 왔냐, 라는 웃음과 함께, 계속해서, 불에 태웠다. 활활, 뜨겁게. 그곳에서 어떤 숭고함 같은걸 느껴버린 난, 절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영화 같은 거 보면, 나오잖아. 뭐가요? 그냥, 사람들이 헤어진 연인 사진같은거 불에 태우면서 질질짜고 그러잖아. 아, 네. 옛날엔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거든? 아, 네, 라고밖에 할말이 없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형은.
태워버릴 것이 남아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은거야. 무언가가, 존재하는 거야. 무언가? 그래, 무언가. 그건, 내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아, 네. 과연, 그도, 그럴법 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암흑의 메커니즘 같은 것에 의해 기계가 제멋대로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 태운다. 땔감을 모으고, 불을 켠다. 형의 의지고, 형의 행동이며, 형이 실존이라고 부를 만한 그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테이프를 태우고 있으면 말야, 이제껏 내가 듣던 음악들이 차례로 귓가에 들려온다. 정말요? 에이..그걸 농담이라고 하시나. 너, 짜식 이거.. 넌 이런 거 한번도 해본 적 없지? 한. 번. 도.. 확실히, 난 그렇게 해 본적이 없었다. 그렇구나.


하지만 형, 음악은.
마음속에 있는 거라구요.

말은 잘한다.


형은 웃고 있었다.
외롭지 않은 사람들이 외롭지 않은 순간에나 보여줄법한 그런 웃음을,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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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소통, 음악

소통과 소통 사이의 비명.

Posted 2008/04/07 13:36 by arc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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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은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지구상에는 화성인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지구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 곳에-
어떻게 왔는지, 왜 왔는지,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내 조상의 이야기니까 단지 그러려니 할 뿐이다.

나도 화성인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꽤 많은 화성인이 지구의 공기 속에서

숨쉬며 자연스레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안다. 그들을 만나면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그들은 지구의 무거운 중력에 힘겨워하고,
그 무게를 벗어나려고 힘써보지만 화성에서처럼

가벼워지기란 사실,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들은 지구인들이 호흡하는 산소의

절반도 채 소모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무리 속에서
그들의 존재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외향적이거나, 내성적이거나의 차이에서 오는 존재감이 아닌,
한 생명체가 진동시키는 공기의 무게 -

그것은 그들을 언제나 외따로이 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만든다.

화성인이 아름답고 푸른 생명의 별-지구에서,

지구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가령, 나는 어떤 여자를 '머쉬멜로우'한다.
이것은 화성인들의 말이지만, 지구에서 말하는

비슷한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
굳이, 억지로 근접한 의미의 말로 바꾸어본다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머쉬멜로우'할 뿐이지,

결코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순간,

내 감정과 그 표현 사이의 아쉬움은 메울 수 없는

커다란 흔적이 되고,
그것은 상처로 남아 난 혼자 고통받고 괴로워한다.

왜냐면 난 그녀를 '머쉬멜로우'할 뿐이니까.

푸르른 지구가, 지구인들의 생명력을 그대로 닮고 있다면,

붉게 메마른 화성 역시 화성인들을 닮았다.
화성인들은 혼자다. 그건 우리들의 고향이 너무나 황폐해서

지하속에 혼자 살아남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어린시절,

어떤 화성인 할아버지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황폐하지 않은 이 지구상에서, 지구인들 사이에서,

화성인들은 여전히 고독하고 외롭고, 익숙하지 못하다.
모임에 익숙하지 않고, 웃고 떠드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표현하되 늘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것에 상처받는다.


화성에서는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물리적으로도 혼자였으니까.
그래서, 물리적으로 혼자가 아닌 이 지구 위에서도 늘 혼자이다.
지구인들은 '쟤들은 조금 이상한 애들이야'.

'외골수적이야'하고는 그냥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 덕분에 아직 화성의 비밀은 잘 지켜지고 있는 듯도 싶지만-
화성인들 중에는 잘 적응한 나머지,

지구인들과 구분이 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여전히, 시간이 흘러도 적응하려 들지않는 화성인을

싫어하는 화성인들도 있다.

나는, 어떤 여자아이에게 구애한 적이 있다.
앞 뒤 구분 못할 정도로, 눈 앞이 멀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 같았고,
요동치던 그 감정을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해보았지만 결국 그건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머쉬멜로우 하는 것과,

그녀가 받아들이는 사랑 사이에는 너무도 깊은 골이

존재한다는 걸,
나는 그때서야 깊이 깨달았던 것 같다.

화성인을 만나도, 화성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도,

어떤 상실감 같은 것을 채울수는 없다.
알고있다. 어린시절 같은 화성인을 만나면

나도 즐거워 질 수 있거나
혹은 내 마음속에 있는 어떤 공허함이나

그리움이 사라질 수 있을거라 믿었었지만
그건 사라질 수 없는, 고향을 떠나온 자들의

그리움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마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어쩐지 애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은
그 사람에게 있어 태고적부터 잃어버렸던

어떤 결여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과 비슷하다.


나는 하루키라는 화성인이 쓴 글을 좋아한다.

그 사람을 만난다 한들,
고향 사람을 만난다는 반가움이나

설렘 따위를 가질 수 있을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지 힘든 꿈 속을 헤메는 듯한 상실감을

공유할 수도 있구나, 말하지 않아도 통할 수 있구나,
이런 것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아 공감할 수 있구나 - 하는 아련한 희망같은것.

나는, 고향이 그리울 때면 데이빗 보위의

life on mars를 크게 틀어놓곤,
그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곤 한다.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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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소통, 화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