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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7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Posted 2008/04/07 13:35 by arcma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 고전주의자와 다원주의자가 있다.


고전주의자는 옳고 그름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너무'강하다. 모든 고전주의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고전주의자는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 속에 타인을 구겨넣고, 자신의 잣대와 기준으로 타인을 심판하여, 그걸로 부족해 재단하려 드는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다수의 고전주의자' 되겠다. 현재의 시대에 맞게 바꾸어 말하면, '배치표적 인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는 미학전 다원주의자이다. 내가 다원주의자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편으론 나의 취향과 정서가 소위 말하는 절대 다수의 취향과 정서에 반하는 경우가 많아, 그로인해 시달릴만큼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또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는 자유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자유- 간섭받지 않을 자유-고전주의자가 절대 권력을 가지는 것이 매우위험천만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멀지 않은 역사속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유태민 학살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 자신의 기준을 권력을 이용해 타인에게까지 확산시키고, 그로인해 집단적 광기와도 같은 무서운 일들이 채 100년이 지나지 않은, 바로 20세기

에 저질러졌다. 고전주의자에게 있어 무서운 점은, 선과 악만이 존재하는 그만의 세계, 세상의 모든 것을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누어 바라보고, 언제나 우열의 시각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

런 점에서, 언젠가 사람의 몇 퍼센트는 살 가치가 없다고 했던 자우림의 김윤아도 고전주의자이다.


지금은 어엿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있는 공병호씨도 고전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겸손과 성실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잘난 척하고 오만한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런데, 난 그러헤 생각하지 않는다. 내 기준으로 볼 때, 나는 겸손보다는 '잘난 '이, 오만이 좋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호오에 불과한 사소한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 그렇기 때문에 굳이 타인에게까지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주장해서도 안되고, 그런데 고전주의자들은 한 개인의 호오에 불과한 이런 것들에 끊임없이 태클을 걸어온다. 왜 겸손이 옳은 가치인지 강조하고, 잘난 척과 오만이 왜 나쁜 것인지 힘주어 역설한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오만과 잘난 척이 나쁜 것이라면, 잡아가야 하는데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생각해보건데, 마치 불의를 보면 견디지 못하는,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 같기도 하다.


또한 고전주의자들의 특징은 대중의 상식과 정서가 마치 절대적인 법인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상식과 정서도 미약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며, 그것이 그 사회

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할 자격조차 없는 것은 아니잖은가?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자가 자위를 하면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수용됐다. 작금에 그것이 합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다. 이처럼 대중의 상식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서늘한 느낌이 들곤 한다.


사실 고전주의자와의 그러한 논쟁은 굳이 말하자면 매우 불필요하다. 나는 나의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우열의 시각 자체를 갖고있지 않기에- 애초에 우열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가하는 자와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나는, 다원주의자는 그저 이

러한 생각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것 뿐이다. 그러한 문제를 굳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끌고가서 결론지어 버리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게다가 고전주의자들은 자신의 기

준이 옳거나, 혹은 그르거나와 같이 명백한 판가름이 나기 전엔 절대 물러서지 않기에,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무서워지고 꺼려지기까지 한다.


가령, 나는 귀여니의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역시 나의 호오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을 읽었고, 새로 나오는 작품도 읽어볼 계획이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 소설을 비판하려면

적어도 읽어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귀여니의 소설을 욕할 수 있다. 얼마든지 마음에 안들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귀여니를 욕하는 사람들이다. 그 소설을 좋아하는 욕

하는 고전주의자들이다.


그녀의 소설에는 기본권이 있다. 그걸 읽고 마음에 안들어서 무슨 욕을 하든간에 소설은 욕하는 사람들을 고소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에게는 기본권이 엄연히 존재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욕하고, 비보취급하고,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즐길 자유를 압박받고, 핍박받게 된다면, 그건 자유주의 사회가 아니다. 비록 나는 귀여니의 소설을 싫어하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기꺼이 난 압박받는 쪽의 편을 들어 싸울 것이다. 그러한 일이 언제 내가 누리는 자유에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귀여니의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원주의자이고, 개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주위를 살펴보면 좋아하는 분야의 음악을 깊게 파고드는 매니아들이 있고, 좋아하는 가수에 심하게 열광하는 팬들이 있다. 여기서는 문희준을 예로 들겠다. 매니아들은 혹은 다른 대중들은 저게

음악이냐고 혹평을 내리고, 그들로부터 소위 빠순이라고 불리는 팬들은 귀도 없냐는 식으로 매니아들을 욕한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이 계속되어서는 곤란하다. 결국 자신의 호오에 인격을 투영시키게 되고, 그로 인해 결국은 인신공격으로 서로의 젊음을 소모하게 마련이라 더욱 그러하다. 엄밀히 말하면, 문희준의 음악을

욕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아까도 강조했지만 음악에는 기본권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에 자신의 인격을 과도하게 투영시킨 나머지 그로 인해 상처받고 타인을

공격하는 팬들이 더 문제다.


하지만 착각해서도 곤란하다. 매니아들이 열고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이 문희준의 음악보다 우월하다고 해서, 우월한- 음악에 이러한 기준을 적용시킨사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음악을 듣는 사

람이 우월한 것은 아니다. 아티스트의 실력이 우월하다고 해서 그것을 듣는 사람이 우월하다는 논리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과도한 인격투영의 결과라는 사

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더 덧붙인다면, 나는 팬 문화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팬 문화에는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 할 만한 요소들이 많이 있다. 고전

주의자들의 시각에서 그 문화가 좋은 것이든 혹은 저급한 것이든간에, (굳이 문화를 고급과 저급으로 나누어야만 하는 시각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팬 문화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매우 독창적이고, 우리들의 문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는 거다.


그에 반해, 매니아들의 문화는 전혀 독창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타국의 매니아 문화에 비해 독창적인 점이 뭐가 있나-오히려

따라가기에나 급급한 것으로 보여진다. 나는 동방신기의 음악을 싫어하고, 문희준의 음악을 증오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단지 그뿐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자유를 타인에 의해 간섭받고, 침해받는 순간이 오면 비록 난 그들이 좋아한느 음악을 싫어하지만, 그들의 편을 들어 함께 싸울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고전주의자가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교육'되고 있다. 고전주의자만으로 세상이 가득차게 되면, 끔찍할꺼다. 불행히도, 내가 생각하는 우리 교육제도의 문제점은 역사 교육의 부재

도 아니고, 기초과학의 부재도 아니며, 모든 매체와 신문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던 학력 저하현상도 아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 모든 것이 하나의 결과에 의해 우열로 나타나는 교육,

테카르트의 이원론이 무엇인지-스피노자의 일원론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지 않고 '데카르트는 이원론이야, 스피노자는 일원론이다'라고 가르치는 교육,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큰 기준이 우열임

을 무의식중에 심어버리는 교육이 아닐까. 주제는 다르지만 문득 '나쁜 교육'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사람은 소통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씩 상처받고, 조금씩 상처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면서 자신의 존재감 그리고  타인의 존재감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그렇게 성장하고, 또 나아간다. 다양

한 시각과 기준이 공존하고 존중받는 세상은 참 재밋을거라고, 혼자 키득거리며 조금은 아련한 마음을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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